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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구조

1. 외대문(정문)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정문은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검박하고 단순하다. 정문밖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된 어정(御井)이 있다.

2. 망묘루

이 이미지는 망묘루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향대청 남쪽에 위치하는 망묘루는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는 건물 중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3. 공민왕신당

공민왕 신당은 망묘루 동쪽에 있는 별당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시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4. 향대청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지당(池塘)이 있고, 그 동쪽으로 망묘루, 공민왕 신당, 향대청 일곽이 있다.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등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祭享)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5. 재궁

정전 동남쪽에 위치한 재궁은 국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재궁 북쪽에는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이 있고, 서쪽에는 어목욕청(왕이 목욕하는 건물)이 있다.

6. 판위대
종묘 제례를 행하는 제관은 맨 처음 헌작(獻爵)하는 초헌관, 두 번째로 헌작하는 아헌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헌작하는 종헌관 등으로 구분된다. 왕이 몸소 제사를 올리는 친제(親祭)때는 왕이 초헌관, 왕세자가 아헌관, 영의정이 종헌관이 된다. 제례 때 제관인 왕과 왕세자는 재궁에서 재계(齋戒)를 한 후, 어숙실에서 정전과 영녕전 동문으로 난 어로를 따라 묘정에 들어와 각각 정해진 자리인 전하판위(殿下版位)와 세자판위(世子版位)에 이르러 제사를 올릴 예를 갖춘다.
7. 전사청

전사청은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주실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

8. 제정
제정은 향제(享祭)에 사용되는 우물을 말하는데 정전 전사청(典祀廳)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찬게 특이하다고 한다. 네면을 담장으로 둘렀고, 남쪽에 우진각지붕의 일각문(一脚門)이 있다.
9. 정전

종묘 정전은 매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신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문인 신문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있다. 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길게 늘린 점에 있다.

10. 정전동문
제례 때 헌관이 출입하는 동문은 정전 신문(神門)과 마찬가지로 지붕 용마루 높이가 같은 세칸 규모의 평삼문으로 되어있다. 어숙실 서협문에서 정전 동문으로 통하는 어로(御路)는 정전 동쪽 묘정에 닿는다.
11. 칠사당

종묘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서쪽에 있던 것으로 봄에 모시는 사명과 사호, 여름의 사조, 가을의 국문과 공려, 겨울의 국행과 그밖에 중류의 7사에 제사 지내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판문과 격자창을 두고 나머지 3면은 전돌로 벽을 쌓았다.

12. 공신당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동쪽에 있으며 창건 때는 5칸에 불과하였으나 나중에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로 되었다.

칠사당과 같은 구조 형식으로 매우 간소하게 되어 있는데 왕의 신실과 한 울타리 안에 있어서 일부러 그 형식을 낮추었다고 생각되며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건축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 와서도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다.

13. 정전남문
혼백이 출입하는 곳이므로 사람은 다닐 수 없다.
14. 정전서문
악공 등이 출입하는 문으로 규모에 차이를 두었다.
15. 영녕전

영녕전은 신실 하나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기 때문에 정전에서와 같은 장대함을 느끼기에는 뒤지는 감이 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공간이 한눈에 쉽게 들어와 친근감을 더해 준다.

네모난 아랫부분에 원형 주좌를 둔 주춧돌에 둥근 기둥과 간단한 초각을 한 익공을 짜고, 퇴칸 안에 두 짝 판문을 달고 뒤는 화방벽으로 쌓고 서까래는 부연 없는 홑처마로 꾸미는 등 세부 구성은 정전과 거의 같으며 역시 부재 표면도 단청 없이 간단히 주칠로 마감하였다.

좌우 익실 앞으로 동·서월랑이 뻗어 나와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고 박석을 덮은 상·하월대가 울타리를 가득 메우는 점도 정전과 동일하다. 이곳은 부재의 처리나 건물의 규모가 전체적으로 종묘 정전보다는 작지만 건축 공간 자체의 장엄한 공간 구성은 여기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친근감 있는 장인들의 솜씨는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16. 영녕전동문
영녕전 제례 때 제관들의 통로로 재궁 서협문에서 영녕전 동문으로 이어진다. 동문 밖에는 사각형으로 된 전하와 세자의 판위(版位)가 각각 자리를 달리 하며 위치하고 있다. 종묘건축의 절제되고 유현한 분위기는 담으로 둘러싸인 묘정안 뿐만 아니라 묘정 밖 공간에까지 이어진다. 둘레담과 어로(御路) 등 제향건축에 필요한 기능과 움직임을 표시하는 단순한 건축 구성미는 종묘건축을 더욱더 상징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그리하여 거기에 항상 신기(神祇)가 충만하게 머물도록 한다.
17. 영녕전남문
원형 주좌를 둔 주춧돌에 둥근 기둥과 간단한 초각을 한 익공, 두짝 판문 등 세부 구성은 정전과 거의 같다.
18. 영녕전서문
악공 등이 출입하는 문으로 규모에 차이를 두었다.
19. 제기고
영녕전 동편에 자리잡고 있는 제기고는 제기를 보관했던 곳이었다. 정면 4간 측면 2간의 맞배집으로 내당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판문을 두었고, 양측 주간에는 살창을 두었다.
20. 정전수복방
정전 동문 북쪽에 위치한 수복방은 두벌 장대 기단위에 정면 4칸, 측면 단칸의 맞배집으로 수복들이 머무는 곳이다.
21. 영녕전악공청
종묘제례시에 주악하는 악사들이 대기도 하고 연습하기도 하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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