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례악의 유래


● 지정번호 :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 지정연월일 : 1964년 12월 7일

● 보유자 성경린 외 종묘제례악보존회

● 전승지 : 서울특별시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과 왕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 제사드릴 대 기악ㆍ노래ㆍ무용의 총칭으로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종묘제례의식에는 각 절차마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여러 음악을 연주하며 동시에 종묘악장(宗廟樂章)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문무(文舞)인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 무덕(武德)을 찬양하는 무무(武舞)인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 곧 일무(佾舞)를 춘다. 세종 31년(1448)에 세종이 국초에 여러 곡을 지었으나, 조종(祖宗)의 공덕이 성대함과 초창(草創)의 어려움을 나타내기엔 부족하다 하여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을 토대로 보태평·정대업·발상(發祥)·봉래의(鳳來儀) 등 새 음악을 창제하였는데, 보태평은 11곡(曲·聲)이고 정대업은 15곡인데, 여기에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장(樂章)을 얹어 부르게 하고 아악기(雅樂器) 당악기(唐樂器) 향악기(鄕樂器)를 섞어 편성하여 연주하고 문무와 무무를 일무(佾舞)로 추도록 하여 연향(宴享)에서 공연하였다.

세조 9년(1463)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이 제례악은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음악이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인조 4년(1626)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으며, 1946년까지 제향에서 연주하였으나 그 뒤 멈추었다가 1971년부터 해마다 5월 첫 일요일에 행하는 종묘대제에서 종묘제례악과 악장과 일무가 동시에 연행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말기까지 장악원(掌樂院) 악사(樂士)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일제 때에는 구황궁아악부(舊皇宮雅樂部) 악사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 악사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보유자는 김종희 외 여러 명이다. 현재 보태평은 희문(熙文), 기명(基命), 귀인(歸仁), 향수(享壽), 집녕(輯寧), 융화(隆化), 현미(顯美), 용광정명(龍光貞明), 중광(重光), 대유(大猷), 역성(繹成) 등 11곡으로 구성되었고 정대업도 소무(昭武), 독경(篤慶), 탁정(濯征), 선위(宣威), 신정(神定), 구웅(舊雄), 순승(順應), 총수(寵綏), 정세(靖世), 혁정(赫整), 영관(永觀) 등 11곡으로 구성되었다. 보태평은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 : C-Sol旋法)로 되어 있고 정대업은 황종궁계면조(黃種宮界面調 : C-La선법)로 되어 있다.


악기는 박(拍), 편종(編鐘), 편경(編磬), 방향(方響), 피리, 대금(大琴), 축, 어, 해금(奚琴), 진고(晋鼓), 마조촉(摩照燭), 절고(節鼓), 아쟁(牙箏), 태평소(太平簫), 대금(大金)으로 편성된다. 종묘제례의 영신례(迎神禮)와 전폐례(奠幣禮)에서 악사들은 희문이라는 보태평 제1곡을 아뢰고, 초헌례(初獻禮)에는 보태평을 아뢰며 도창(導唱)은 조종의 문덕(文德)을 기리는 악장을 노래부르며 무원(舞員)들은 손에 약(?)과 적(翟)을 갈라쥐고 문무(文舞)를 팔일무(八佾舞)로 춘다.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에서 악사들은 정대업 전곡(全曲)을 아뢰고 도창은 조종의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악장을 부르고 무원들은 앞두줄은 목검(木劍, 나무칼)을 들고 중간 두줄은 목창(木槍,나무창), 뒤로 두 줄은 활과 화살을 들고 무무(武舞)를 팔일무로 춘다. 진찬(進饌)ㆍ 철변두(徹邊豆)ㆍ송신례(送神禮)에는 아악곡(雅樂曲)을 아뢰고 악장과 일무(佾舞)는 없다. 종묘제례악은 장엄하고 웅대한 음악이며 500여 전에 전승되던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이 제례악(祭禮樂)으로 승화되어 전승되어온 귀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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