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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신라시대에는 시조묘(始祖廟),고려시대에는 태묘(太廟)라고도 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먼저 정궁인 경복궁의 위치를 정한 후 동쪽에는 종묘를 세우고, 서쪽에는 토지와 곡물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사적 제121호)을 세우도록 하였다. 종묘는 왕가의 조상을 모신 곳이고, 사직단은 국토와 곡물의 신을 모신 곳이어서 종묘와 사직은 나라의 역사와 뿌리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종묘와 사직은 국가의 근본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라가 위태로울 때 종사가 위태롭다고도 하였다.
종묘제도는 중국의 우나라 때 시작된 것으로 은·주 나라 때까지는 7묘제였다가 명나라 때는 9묘제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는 5묘제였다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에는 7묘제를 채택하였다. 즉 7대왕 이상의 신주는 정전으로부터 영녕전으로 조천하게 되어 있었다. 종묘의 정전은 태조3년(1394) 12월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다음해 9월 태실 5칸에
좌우의 익실 각각 2칸으로 건립되었다. 정전이 완공된 초기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위를 모셨다. 그러나 세종3년(1421) 정종이 승하한 뒤 왕의 신주를 모실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중국의 송나라 제도를 도입하여 별묘인 영녕전을 설치하여 추존한 4대 선조의 위패를 옮겨 모시게 되었다. 태조4년(1395)에 세워진 정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1608년 중건된 후 몇 차례의 개수와 중축을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이 좌우로 긴 형태의 19칸 건물이 되었다. 원래 정전에는 7대까지만 선왕의 위패를 모시다가 후대가 되면 조묘인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던 것인데, 공덕이 큰 왕은 불천위라 하여 그대로 정전에 모시게 됨으로써 정전의 신주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현재 정전에는 태조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19개의 신실이 있으며, 영녕전에는 목조로부터 의민황태자에 이르는 16실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이밖에 공신당에는 나라에 공이 있는 조선시대 공신들의 신주 83위가 모셔져 있다.
사적 제125호로 지정된 종묘는 국보 제227호인 정전과 보물 제821호인 영녕전을 비롯한 각종 유적과 유물이 보존되고 있다. 이에 유네스코는 종묘를 인류전체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1995년 12월 “세계문화유산(제738호)”으로 지정하였다. 이와 함께 종묘에서 거행되는 국가제사의식인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 2001년 5월 유네스코로부터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