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복감실
조선의 왕실제례는 정전과 영녕전에서 각각 따로 지내는데, 정전에서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과 음력 12월에 영녕전에서는 매년 봄, 가을과 음력 12월에 따로 날을 정하여 제례를 지냈다. 그러나, 현재 종묘제례는 종묘제례보존회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을 정해 종묘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종묘제례를 지내기 위해서는 왕과 왕비 그리고 문무백관이 종묘를 한차례 회유하는데, 조선후기부터 왕은 창덕궁에서 종묘까지 가마를 타고 행차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어가행렬 또한 옛 방식 그대로 종묘제례 전에 거행함으로써 장엄한 왕실의례를 국민적 축제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종묘제례를 이처럼 국가적 의례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묘가 왕족인 전주 이씨의 사당이기 때문에 종묘제례를 왕실의 조상신을 추모하는 가족제사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실은 곧 국가로 여겼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종묘제례는 엄연히 국가적 의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종묘제례는 유교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철저하게 유교적 절차에 따랐다. 제례는 길례의 일종 이어서 종묘제례때 참여하는 사람들은 기쁜날 입는 의식용 예복을 차려 입는다. 제례를 집전하는 왕은 제왕의 위용을 상징한 면복을 입는데 이것은 면류관과 장복을 합친 명칭이다. 조선시대에는 후장면복을 입었으나 1897년 대한제국시대부터 황제가 입던 12장복을 입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12장복에는 해와 달, 용, 삼, 화, 화충, 수푸른 모양의 종이 등 12가지 문양이 수 놓아져 있다. 이러한 문양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양으로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잘 다스려야 함을 뜻한다.

또한 면류관은 장방향의 판에 여러 색깔의 주옥을 늘어뜨린 일종의 모자다. 면류관 앞으로 내려뜨린 구슬들이 시야를 약간 가림으로써 신하의 흠을 어느 정도 묵인해 주는 왕의 너그러움을 상징한다. 제례는 신을 맞는 절차, 신이 즐기는 절차, 신이 베푸는 절차 및 신을 보내는 절차의 순서로 구성되며, 절도있는 순서로 진행되어 엄숙한 청중심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가행렬이 도착하면 본격적인 의례가 진행된다. 우선 정전의 남문에서 축함을 들고 신로를 따라 들어오는 봉축지형을 시작으로 음악과 무용을 곁들여 장엄한 행사를 알린다.

그리고, 임금을 대신한 초헌관이 소차에서 나와 정전으로 이동한다. 조상신을 맞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하는데 손을 씻는 관세의식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세를 한 제관들은 미리 정해진 각자의 자리에 가서 서게되며, 이것을 취위라고 한다. 제례의 혼백은 감실에 머물러있는데 감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신실까지 신주를 모셔오는 의식은 종묘제례 중 매우 성스럽고 귀한 절차다. 죽은 왕의 이름과 사망한 날짜를 적은 신주 혹은 위패는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하는 것으로 흔히 밤나무를 사용하여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나게 만든다. 종묘정전의 감실 내부에는 신주뿐만 아니라 어보와 어책도 함께 보관되는데, 어보는 왕의 인장을 말하며 영물이라 불리는 거북이 형태로 몸체를 만든 도장으로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어책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을 책봉할 때 내리는 교서를 말하며, 왕과 왕비의 옥책은 옥에 새기고 세자와 세자빈의 죽책은 대나무에 새긴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종묘제례..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정전의 정적 속에서 조상과 후손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교감이 흐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