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무(佾舞)는 중국 주나라 때 아악에 쓰이던 무용으로 일(佾)이란 열(列)을 뜻하며 줄을 맞추어 추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춘추좌전에 의하면 주인공의 신분에 따라 8일무, 6일무, 4일무, 2일무 등이 추어지는데 인원수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진나라 두예(杜預)의 이론으로 각 열과 행의 인원수가 같아 팔일무는 64명(8열8행), 육일무는 36명(6열6행),사일무는 16명(4열4행), 이일무는 4명(2열2행)이라는 주장이고, 반면에 후한의 복건(服虔)은 각 열이 8행씩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팔일무는 64명, 육일무는 48명(6열8행), 사일무는 32명(4열8행), 이일무는 16명(2열8행)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전자의 학설을 따르고 있는데 고려 예종11년(1116) 6월 중국으로부터 아악이 들어올 때 문무와 무무에 필요한 옷과 장식을 각 36건씩 일습을 들여와 제사에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일무는 세종 때 회례악무로 창작되었고 세조 때 종묘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문무인 보태평지무와 무무인 정대업지무가 있다.
문무(文舞)
역대 선왕들의 문덕을 기리는 춤으로서 보태평지악에 맞춰 왼손은 구멍이 세 개 뚫린 관악기인 약을, 오른손에는 긴 막대기에 꿩 깃털로 장식한 적(翟)을 들고 추는 춤이다. “악학궤범”에 보면 악공 38인 중 춤 36인, 둑 2인 모두 진현관을 쓰고 남빛 명주옷에 검은 선을 두른 치마를 입으며 붉은 띠를 두르고 희 베버선에 검은 가죽신을 신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춤사위는 양(陽)의 순리를 본떠 왼쪽 손발을 들어 왼쪽으로 도는 좌선(左旋)이고 몸을 구부리는 동작부터 하는데 정적이며 “구름에 달 가듯이”흘러가는 부드러운 동작을 취한다. 이 춤은 영신 · 전폐 · 초헌례 때 추게 된다.
무무(武舞)
선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춤으로 일정한 형식이 없으며 정대업지악에 맞춰 나무로 만든 칼과 창, 활과 화살을 손에 쥐는데 아헌례와 종헌례 때 추게 된다. 악공은 모두 71명으로 가죽 변(辨)을 쓰며 의상은 보태평의 복장과 같다. 36명의 무원을 제외한 나머지 35명은 각(角), 둑, 북, 징, 소라, 오방색의 깃발 등 여러 의식용 기물을 들고 춤에 맞춰 움직이므로로서 의장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춤사위는 음의 반을 본떠 오른쪽 손발을 들어 오른쪽으로 먼저 도는 우전이고 몸을 펴는 동작을 우선한다. 전체적으로 간결하여 “은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강한 동작으로 검술을 하듯 추는 춤이다. 조선전기에는 6명씩 6줄을 맞춘 36명의 일무원이 춤사위를 짓는 육일무였으나 황제국 임을 선포한 대한제국시대부터는 8명씩 8줄에 64명의 일무원이 춤을 추는 팔일무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태평과 정대업의 춤은 위와 같이 종묘제례 때 추는 춤과 향악정재(鄕樂呈才)로서 연향에서 기녀가 추천 춤의 두 종루가 있다. 또한 반주음악이 보태평과 정대업으로 나뉘듯, 양의 속성을 지닌 문무와 음의 속성을 지닌 무무로 나뉘고 이들은 각각 손에 드는 의장물이나 춤의 동작이 바뀌고 상징적인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현재 일무원들의 복장은 문무와 무무 모두 복두와 홍주의(紅紬衣) · 남사대(藍絲帶) · 목화(木靴)의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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